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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8-잠수함2018-12-2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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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도피생활


그때부터 도피 생활을 시작했죠. 그래 1년간 서울에서 도피하고. 해외로 나갈 때까지.  과정은 여기에  들어 있어요. 다시 인제  정세분석 이야기를, 내가 도피생활 하면서 반성했던  어떻게 내가 정부 기습에 대해서는 예상을 못하고 바보짓을 해가지고 21, 25일로 봤는가. 엄청나게 반성을 하다가 하여튼 괴로웠지. 도피생활 자체가 엄청나게 괴로웠지. 그런데 내가 도피생활 하면서 단순한 것이 아니라  전에 내가 이야기 했던 박정희 이제 암살해 불라고 했다고,  팀들 중에서 인제 정상용이하고   친구   친구 셋이가 도청 항쟁지도부에 들어가 버렸고, 박형선이는 예비검속 되어 있고. 그러니 인제  사건까지 아울러서 터질 가능성이 커지니까 거기다가 인제 내가  전홍준 선배 집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갖고, 인제 오수성 교수 같은 경우는 윤상원이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알고 있드라고요. 내가 무장투쟁을 하고 어쩌고 해서 도청을 장악하고 했던 이야기를  학생회 간부 애들이 들은 거예요.


  이야기를  거에요, 자기들끼리. 근게 자기들 선배들이 무장투쟁을 준비하고 있으니 우리도 호응을 같이 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자유노트라는 데다가 전부다 기록을 해놓은 거예요, 회의기록 같은 것을. 그게 자유노트 사건인데.  노트를  학생회 간부 중에  놈이 나중에  숨어 있다가 자수하면서 갖고 들어가 버렸어. 다행히 수사가 일단락  다음에  노트가 나와 가지고  내용을 뒤집지를 못한 거예요. 이미 수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유야무야 했는데. 인제 거기서 송선태라는 친구가 자기가 그걸 작성을 했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썼다. 생각 없이. 그렇게 오리발 내밀어 불고 끝났는데. 인제 고게 사전에 인제 준비한 것처럼 되어 버리다고. 폭력 폭동을. 거기다 박정희 암살 이야기 나오면 골머리 아퍼버리지 인제. 그런데다가 당시 수천 명을 잡아 넣어노니까 검찰력이 딸린 거예요. 수사력이. 그러니까 전국 각지에서 검찰, 군법무관하고 검사들을 차출을 해요. 그러니까 인제  지역 사정을 전혀 모르는 놈들이 많이 왔는데.  중에서 인제  지역 사람하고 아는 검사들이 정보를 흘려준거죠. 왜냐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윤한봉이는 이번에 잡히면 죽는다.  죽여불라고 계획을 세우고 있더라.   사람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데  사람 잡히면  된다.  이야기가 인자 서울에 도피하고 있는 나한테까지 들려요.  다음에 우리 작은 형이 인제 잡혀 들어갔다가 그대 대동교 교사였는데. 학생들이 시위하고 그러는 바람에 수습대책위 관계했다고 나오는데 검사가 불러가지고 당신 동생 윤한봉이는 잽히면 무조건 죽인다. 다른 사람은  죽어도  사람은 죽는다. 당신 동생은. 그니까 절대 잡히지 않도록 해라. 인제 그때 당시에 오월 항쟁에 대해서 신군부쪽에서는 폭동으로 뭐라 뭐라 했지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마음속에서는 그게 아니었으니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철저하게 도피해라. 나도  사람 모른다.


 그러나 내가 와서 보니까 그렇다.  정도로 (엄청난 거죠) 근데  다음에 인제 내가  두어  있으니까 사건이 수사가 일단락됐어요. 정동년씨를 수괴로 해가지고, 처음에 홍남순 변호사 송기숙 교수로 하려다가 도통 안되니까 인제 정동년이로 갔는데. 김대중씨 방문해가지고 방명록에 이름  놓은 것이 나온 바람에 인제 그렇게 됐는데.  끝났다 그런데 내가 잡혀불면  다시 시작 한다. 수사가.  다음에 광주에 남아 있는  나마의 운동영향까지도 싹쓸이 당해 버린다. 인제 나하고 얽히고 설킨 것이 너무 많으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잡혀서는  된다. 그러면서 인제 박정희 암살을 같이 이야기 했던 친구들 그쪽에서 올라온 이야기가 청산가리를 형님한테 올려 보내자 잽히게 되면 자살을 하라 운동을 위해서 자살을 하라고. 청산가리 이야기가 나왔어. 근게 이제  그건 너무하지 않냐. 형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랴. 그래가지고 나한테까지는  왔는데, 청산가리가  왔는데  이야기까지가 들린 거야. 그런 속에서 내가 저번에 이야기 안했었나? 도피하면서 목욕하면서도 입에다  물고 있다고. 그러니까 인제 혼자서 독방을 쓰면서, 방에 있으면서  벗고 상의를 벗고 심장 부위를 이렇게 마커로 그려가지고  남민전 사건 때문에 내가  그랬는데 남민전 사건이, 폭동의 주범이 잡힐때 자살 시도 했잖애.  양반 이재문씨, 그렇게 해서 죽어 버렸으면 간단한데 가슴을 찔렀는데 잘못 찔러갖고  죽어분거에요. 그래갖고 이것저것 줄줄이 사탕으로 나와 부렀지. 인제 그것 때문에 내가 인제 여기다 거울 앞에서 심장을 이렇게 그려 넣고는 누가 이렇게  물고 있을  잡으로 오는 것은 아니니까  자다가도 급습당할 수도 있고 엎어져서  읽다가도 급습당할  있고.  싸다가도 급습 당할 수도 있고.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이제 오른손이건 왼손이건 인제 칼을 잡고 정확하니 거기(심장) 쑤시는 연습을. 여그다가 칼을 항시 꽂고 있었어요. 양말 속에다가. 그래가지고 저녁에 도피할  잠을 자더라도 양말을 벗지 않고 잤으니까. 그래가지고 무수히 연습을  거예요. 쑤시는 연습.  다음에 그거기 실패했을  인제 대동맥 경동맥 자르는 . 그래가지고 이쪽에다가는 면도날 요쪽에다가는  , 과도. 날카롭게 . 인제 경동맥은 면도날 하나면 있으면 긁어버리면 되니까. 그래서 이제 목욕탕에 있을   벗고 때밀이하고 이라고 있을  갑자기 들이닥쳐 불면 어떻게 할거이야 인자. 그래서 이제  물고 그런 거라고(목욕했어요). 아니, 그때는 진짜  그냐면 눈을 감아도 떠도  피만 보이니까. 그때  절박한 처절한 상황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햐가  . 그런 도피생활을  1 했지. 그래갖고  놈이라도 죽이고 나도 죽는다.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놈이라도 죽이고 죽는다. 그렇게 해서 광주를 지켜야 한다. 운동을. 한번은 하도 화가 나가지고 광주로 다시 내려와 가지고는 한번 다시 준비를 한번 할라고 광주로  내려갈라요 광주 도피처  준비를 해달라고 하니까 여기 절대로 내려오면  된다고.  도와준다고.  내려오게 강력하니 막아. 그러다가 인제 그런 속에서 해외 망명, 이렇고 있을 바에야 나가서 싸우는  낫지 않냐(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좋아라 하지 광주에선. 그렇게 하시죠, 그렇게 하시죠. 그래가지고 이제 상의해서 해외로 나가게  거에요


그래 해외 나가서 내가 미국 배안에서,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망명생활 어떻게  것인가 마음으로 정한 것들이 이제 그런 거지. 감옥 생활 하듯이 절대 침대에서는  잔다. 항시 도피한다는 생각속에서 긴장을 풀지 않기 위해서 내가 망명생활을 하는 중에 허리띠를 풀지 않는다.  담에 선원들한테 들으니까 미국은  샤워를 그렇게 많이 하드만. 근데 나는 한달에 목욕  번씩만 한다. (웃음) 그리고 이승만이처럼  꼬부라져서는 안들어 올라니까 영어는  쓴다. 미국생활에 적응하려면 운전을 해야 하는데. 운전 안한다.  것을 갖지 않는다. 등등을  한다고 아주 다짐을 했지. 그래갖고 고놈 지키는게 제일 힘들었던  다른 것은 괜찮은데 허리띠  풀고 자는 . 이제 입은  채로 자고 살아. 12년은 그렇게 살았어. 그래서 인제 다른 지역은 괜찮은데 LA 덥거든. 허리띠  풀고 양말 신은 채로 내가 12 살았는데 인제 내가 허리가 아파  좋아가지고  수지침을 왕창 맞을 때에  일주일 내가 추리닝으로 갈아입었지  외에는 내가 허리띠  풀어놨어. 왜냐면 이걸  왕창 꼽아놓으니까 어떻게 이걸   없으니까 (*바지춤을 올리는 시늉을 )   없이 추리닝을 입었지. 그리고 인제 통장도 없고 운전면허증도 없고 신분증도 없고   방도없고 민족학교 같은  세워가지고 인제 거기 한쪽에서 자고 동가숙서가식 하는 식으로 살고. 근게 내가 아무것도  가진 채로 옷은 이제 얻어 입고 주워 입고. 그렇게 살다가 비행기 타고   식사시간 되면  먹을거냐 그러면 옆사람  가지고  사람  주라고 저거 주라고. 911테러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신분증 조사 같은 것은 거의  해요. 이를테면 인제 저임금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봉제공장이라든지 이런 곳을 그렇게 가끔 일년에  차례씩 급습하는 형식이지 우범자 아니면 길거리 지나가는데 신분증 보자는 예가 없어. 내가 12년간 있어면서 신분증 보잔 소리를  번도 들어본 적이 없죠. 비행기 맘대로 타고 다니고 (누군가가) 공항에 있는  실어서  흔들어주면 타고 내리고 기다리고 있다가 태워갖고 가고. 그렇게 해서 인제  지역에 가서 조직 만들고  지역에 센터 만들고. 그래서 이름을 민족학교, 청년학교 그렇게 하고. 청년들을 의식화해서 인자 재미한 청년 만들고 나이  분들 모임 만들고 해외의  청년 만든다고 유럽 호주 이런데도 만들고. 12 하다가 영삼이가 들어와 가지고 (대통령되어서) 귀국 허용해서 들어왔는데 우너래는 내가 87 대통령선서가 끝나고 나서 88년에 총선이 있잖아요


총선  이미 항쟁 지도부에 있었던 정상용이가 국회의원이  거에요.  518 들어갔던 박석무씨도 국회의원 됐고. 다시 말해서 사면복권이  돼버린 거에요. 88년까지 해서. 5 관련자가. 근데 나는 93년에 들어온 거에요. 5년을  있다 들어온 거지. 이유가 뭐냐. 인제 미움  거지. 해외 활동이. 해외활동에 의해서  분들한테 미움타고 김대중씨의 방해. 내가 김대중씨 욕을 사정없이 해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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