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방화사건 주모자로 연행과 물고문
근데 인자 나는 그런거 떠나서 이게 거 10월 달에 이제 또 감방을 가게 되었는데, 10월 3일경에 전남대 인자 본관 방화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지도감사실. 안기부 직원들하고 정보부 직원들하고 서부경찰서 형사들 일종의 쉼터지 거가 사무실이지. 저 학교 본관에가 그런 방들을 줬으니까 아예. 근디 인자 고걸 그 연통을 통해서 불질러 갖고 거 조끔 태워갖고 피해액이 만 오천 원 나왔는데, (웃음) 그 원수들이 거 백장민가 하는 영화보고 나치하에서 학생들이 운동 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죽음인가 하여튼 그런 책을 책 내용을 영화한 거 있었다고요.
고것보고 와 가지고 이제 고희숙이 머 신영일이 이런 애들이 하여튼 지앙을 친거에요. 그래서 또 이 자식들 태울라면 야무지게 태우지 그거 조금 태우고 어쩌고 인자 그러고 인자 쉽게 넘어갔는데, 얼마 이후에 내가 돈이 또 운동자금 마련 때문에 이게 뉴스에서 멸치를 가루로 만들어서 가루멸치로 만들어서 팔면 잘 팔린다고 그래가지고 이제 후배가 자기 형하고 뭐한다고 그래가지고 가루멸치가 잘 팔릴거라는 얘기를 어서 들어놔서 가루멸치를 내가 한 번 팔어볼까 하고 여수를 내려가고 있는데 부마항쟁이 터진 거예요. 인자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이거 말이 안된다 이건. 왜냐면은 인자 그 동안에 쭉 운동을 해오면서 봤지만 그렇게 대규모로 어떻게 보면은 민중봉기형식으로 그렇게 크게 터지리라고는 상상을 못해버렸으니까 당시 상황으로서는. 이게 전망은 둘째하고 아예 상상은 못했으니까 그저 대학에서 유인물 뿌려가지고 학생들 몇십명이라도 모이면은 뭐 될 정도고 농민들이 아까 말했지만 팔백명 모여서 집회하는 정도 그거이 큰거였다고요.
아 근데 부산 마산에서 그런 엄청난 사건이 터져버리니까. 이거 뭐 긍게 의외에 사건에 충격을 받았지요. 어떻게 이거 가능한가, 왜 우리는 예상을 못했을까. 전망을 상상도 못했을까, 이거 문제가 있다. 빨리 가봐야겠다 내가.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 사회를 잘못보고 있고 대중을 잘못보고 있다. 그래가지고 인제 거기를 가기로 맘먹고 광주 들러서 일처리 해갖고 갈려고 왔어요 이제. 일을 좀 지방에서 보고 와가지고 연구소에 딱 들어갔더니 그때 23일이에요. 그랬더니 형사들이 들이닥쳐가지고 그 몇 일 전에 남민전사건이 터졌죠. 남민전사건이, 남민전사건은 묘하게 피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어쨌든 그래가지고 이제 무작정 나는 끌려간거지. 그랬더니 이 무지한 놈들이 서부경찰서 수위실 여가 유치장이면 여가 수사과이고 일층 여가 유치장인데 유치장옆에 숙직실이 있는데 숙직실로 덱고 들어가요. 들어가서 보니까 이미 의자 두 개 세워놓고 몽둥이 걸어놓고, 빠께스에 물, 걸레 주전자부터 딱 물고문 준비 해놨더라고. 그래갖고 들어가서 가자마자 이런(등치 큰)놈들이 있어가지고 옷 벗기고 그리고 이렇게 수갑채우고 이렇게 해서 여기다(허벅지에다) 장대 채우고 물 먹이는 물고문을 시작을 했는데, 인제 그것이 어떻게 됐냐면 부마항쟁이 터지자 부산에서 마산으로 번지고 가라앉을 만하니까 대구 계명대에서 그러니까 이것이 전국으로 확산될 것을 긴장을 한 거예요 이놈들이. 정권차원에서. 그라고 광주를 중시한 거예요.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판단한 거이죠.
그래서 그때 인제 내가 들은 정보로는 인제 그때 육군항공대에서 이 가스탄을 가득 실은 경비행기를 인자 광주 송정리 비행장으로 내려보내고 해서 광주에 대해서 이제 사전 준비를 해가고 있던 시기예요. 근데 이미 광주에서 본남 전남대 본관 방화사건이 터지고 남민전사건 부마항쟁 그러니까 이 광주에서 예방을 철저히 해라. 긍게 하여간에 이 불소시게 역할을 할 놈들을 철저히 잡아라 이런 지시가 떨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나중에 들어보니까 우리 고문한 놈들이 세련된 정보부에서 파견된 놈들도 아니고, 경찰출신들도 아니고 전경들 중에서 등치 좋은 놈들, 사람 때리믄 기분 좋아할 때리는 것을 즐길 놈들을 동원한거야. 그래가지고 그냥 방에서 직접 패버리니까 거 수위실 숙직실에서 수사과에서 다 들려블고, 유치장에서도 다 들리는거예요. 지하실이 아니니까. 지하실도 안기부같은데 정보부같은데 보믄 지하시리에 있는 수사하는 방도 전부 방음장치가 돼 있는데요. 그런 것도 안 되어있는 유리창 여닫이문인데 새끼들이 거기서 무자비하게 이게 고문으로. 그러니까 인자 광주 학 전남대에서 쪼끔 의식화서클 어떻게 해갖고 뛰어다니는 놈들 거슬렸던 놈들 다 잡아다가 고문을 무조건 해 버린거여. 그때 화장실 같은데다 낙서했던 친구 신민정부터 시작해서 편지, 괴편지 보냈던 발신인 이름 안하고 보냈던 박병기나 이런 애들부터 시작해서 뭐 시위 준비했던 애들부터 다 잡아브렀어. 물고문 해버리니까 두들겨패고. 그러는 과정에서 인자 나를 방화사건으로 연결 시켜서 잡아 넣어블라고 계획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박병이 이 원수가 내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내가 들어갔는데. 박병기가 하루는 와 갖고 연구소에 날더러 형님 나 돈 얼마만 주소 그래, 왜? 얻다쓸라고? 근디 물어보지 마시구요 그 돈으로 술먹겠습니까 꼭 필요해서 그런다고. 근디 인자 내가 암말도 않고 주고 말아브렀으면 쓰거인데 그게 또 얼마전에 김영종이가 징집거부운동에 참여해 갖고 수배당하고 도망다니는데 영종이가 돈이 좀 필요하다고 도피자금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와가지고. 이번에 내가 김성종이한테 성종이한테 내가 돈을 좀 해서 올려보냈거든요. 인제 박병이가 그래서 영종이 도피자금 때문에 돈을 써블고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내가 주란대로 다 못주고 요만만 줄테니까 써라 그러고 돈을 줬어요. 그러니까 그 돈 준놈을 불어븐거여 인자. 윤한봉이가 시켰지 계속 나를 들이대갖고 고문을 하니까 그래가지고 돈 준 것이 드러나브렀죠.
그래가지고 너 잘걸렸다 나를 잡어다놓고는 이 남민전으로 붙어보고, 뭐여 이게 방화사건 배후조정으로도 붙여보고 나는 전혀 모르는 애들이니까 그 애들을. 인자 그래가지고 그래가지고 내가 3일간을 엄청나게 엄청 심하게 고문을 당해브렀습니다 물고문을. 인자 얼마나 물고문하게되면은 이 허리라던가 이런데를 다 상하게 되는데, 몸부림을 치니까. 묶어놓고 해브니까 허리가 부어버려 가지고 내가 인제 벽에 기대지 않고는 앉지도 못하고, 일어설 때도 이렇게 못 일어나고 벽잡고 일어스고 앉을때도 벽잡고 미끄러지듯이 간신히 앉고 그렇게 됐는데. 그런데 인자 삼일째 되는 날 저녁에 그렇게 하고 고문하다가 피곤하면은 이놈들이 두놈이 지발하나에다 내발 요놈발에다가 내발 이팔에다가 내손 저팔에다가 내손 수값 네 개를 딱 채워갖고 지그들 코골고 자는거예요.
인자 긍게 내가 꼼지락만 거리면은 발로 차블고 때려븐거여. 지그들은 인자 밑에다가 깔고자고 시월달인데 숙직실이 찬데 이 바닥에서 나는 암것도 안깔고 하니까 등 몸은 차지 물붙고 그러니까 이놈들이 맹물로 한 것이 아니라 화학약품이라고 그래요 남자구실 못하게 하는거라고 그래갖고 뭘 타갖고하는데 그런것들이 범벅이 돼 있으니까 가렵지. 사람 환장하지 가렵긴 한디 이거 긁을수가 있나. 여기서부터 뭐가 긴것 같으면은 한 오분에 걸쳐서 여기서부터 가렵기 시작해갖고, 그렇게 대각선으로 요리 지나가는 것 같애 벌레가. 진짜 진짜 암안보이니까 뭐. 그래가지고 그 가려움을 인자 막 얼굴 시렵게 하면서 아주 미치지. 저려오지 꼼 움직이면 때려블지 그렇게해갖고 얻어터지다가 고문당하다가 물고문당하다가 이렇게 한놈은 올라타고 내 머리하고 귀딱잡고 한놈은 볼펜들고 나를 깔고 앉아갖고 막 주먹을 온몸을 문질러요 그럼 민감해져 벌겋게 된다고. 그럼 인자 눈 딱 가려놓고는 꽉 잡아놓고는 볼펜으로 옆구리를 팍 쑤신다고 그러면 이 몸이 의지와 관계없이 이렇게 욱 이렇게 간다고. 내 눈가린지라 어디로 숙인지 모르지 또 여글 팍 또 욱하고. 요걸 계속 하는거야 인자. 사람 완전히 인자 땀으로 목욕하면서 인자 이렇게 문질러 놓은 것이라 민감하니까 이 불펜 이렇게 쑤셔도 되게 고통스러워요 인제. 인제 이놈들은 즐기는거야 인제. 근데 26일날 아침이 되니까 이놈들이 갑자기 나갔다오더니만 내 수갑을 풀어주면서 다 같은 국민이고 나라걱정하는 것은 방법이 다를 뿐이제 똑같은 거리느니 어째 좀 몸이 어때 어디가 어때 해쌌고 담배를 주고 이상한 짓거리해싸 근데 이런 고문을 받아보면은 갑자기 인자 이상한 짓거리 하면 또 다른 방법으로 괴롭히는 것의 시작을 의미하거든. 이 새끼 또 뭔짓거리 할라고 이러노 이러고 있는데 한놈이 모르는 놈이 하나 들어오더만은 벽에 탁 기대앉더만은 어허 나라가 걱정 돼 나라가 걱정돼, 그런데 실내방송이 들리는데 뭐락뭐락한디 유고 계엄령, 들려오는거야. 이놈들이 갑자기 이상한 짓거리하고 유고, 계엄령 나라가 걱정, 아! 이거 박정희 죽었구나 이것이 순간에 발끝에서부터 간질간질 해갖고, 그 쾌감은 아직 그 이후로는 느껴본 적이 없는데 온 몸이 간질간질하면서 희열이 아 나 살았다 나 더 이상 고문없다, 박정희 죽었다 세상바뀐다. 아 그때 참 희한한 경험했어. 우리 어머니는 이제 그때 광주에 있는 작은 형님 집에 계시다가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는데, 한봉이 살았다 한봉이 살았다, 박정희 죽었다고. 그래도 인자 그 뒤로 유치장으로 넘어갔다고 교도소로 갔는데, 그때 내가 팔이 완전히 이쪽 왼쪽 팔이 완전히 마비가 돼브렀어 인자. 그래갖고 인자 뿔 이렇게 집어도 힘이 안들어. 그래갖고 맨날 교도소에서 10월 내가 23일날 구속 돼 끌려가갖고 12월 9일 날인가에 나와요
그러니까 최규하가 인자 대행을 하면서 대행이었던가 체육관에서 다시 뽑혔던가 그래가지고 긴급조치를 해제를 해요. 그래서 인제 뭐 인자 법이 없어져 브렀으니까 이 석방 된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때 모두들 들어갔던 후배들도 다 그때 한꺼번에 나오게 되는데, 나와가지고 고향에 가서 선산에 가서 인사드리고 어머님이랑 모두 인사드리고 있는데 1212쿠테타가 터진거죠. 쿠테타가 터졌어요. 아하 쉽사리 가는 것이 아니구나. 이게 좀 뭔가가 잘못가고 있아. 이게 괜히 헛꿈꿨던 것은 아닌가 민주화 가능성에 대해서 낙관했던게, 무색하게 돼 버린거지 인제 그래서 아 빨리 내가 부산을 가봐야겠다. 부마항쟁의 연행되기 전에 갈라 그랬는데, 연행된 바람에 못 갔는데 이제라도 가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현장확인을 해야겠다. 그러고 인자 마음먹고 그때 겨울비가 부슬부슬한테 내가 부산에 갔죠. 부산으로 가서 부마항쟁에 시위대들의 진출경로중에서 중요한 뭐인제 국제시장이라들지 남포동이라든지 이런데를 혼자 비맞고 돌아다니면서 팥죽 끓이는 아줌마들한테 얘기해보고 사람들 거기 또 부산에 운동하는 친구들 이야기도 듣고, 거그 거쳐서 마산으로 가려다가 부산에서 홀연히 깨달은 것이 아하 이래서 내가 못내다봤구나, 그렇게 돼서 인제 아 마산에 갈 필요 없다. 그라고 광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거였죠.
그 그과정 그과정부터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돌아올때까지의 이야기는 여가 다 쓰여져 있어요. 인제 그 현장 갔다온 것부터가 끌려가서 10월달 거기 거까지가 여가 들어있어요. 이 이야기는 뭐 길게 할 필요 없는거요. 다만 이 책에서 빠진 부분이 그 518이후에 내가 수배당하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도피생활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없었던가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조직의 명령에 그 이야기는 빠져있었다고 여가. 요고 쓸데만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있었던때라 그걸 못다룬 거죠. 그리고 인자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조끔 더 하고 5월 관련 이야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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