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5월 19일 아침이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윤한봉은 애써 눈물을 감추며 공항으로 출발했다. 치과의사 최진환 박사와 한청련 부회장 강완모가 광주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공항까지 나온 배웅 나온 회원들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윤한봉도 눈물이 솟구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만 12년 세월이었다. 34살의 젊은이로 왔다가 46살 중년이 되어 돌아가는 길이었다. 샘처럼 솟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려니 추억이 새로웠다. 망명살이를 하는 동안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배웅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저곳을 통과해 비행기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가나’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그 검색대였다. 회원들을 뒤로 하고 검색대를 통과해 탑승구를 지나 비행기를 오르는 발걸음이 납덩이를 매단 듯 떨어지지를 않았다. 미국에 두고 가는 한청련과 한겨레 회원들에 대한 그리움이 벌써부터 가슴에 구멍을 뚫었다. 좌석에 앉은 윤한봉은 비행기가 이륙하고도 두 시간이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마음을 그는 이렇게 글로 남긴다. “추억 속에 명멸하는 수많은 얼굴들이 비행기가 이룩한 후 두 시간 동안이나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