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전날, 회원들이 급히 양복과 구두를 구해왔으나 윤한봉은 이를 거절하고 평소 입던 옷에 운동화를 신고 가방만을 챙겼다. 가방 속에 새로운 물건이라고는 한국은 면옷이 비싸다며 회원들이 사준 하얀 속옷 열 벌과 비행기에서 먹을 호박죽, 민족학교 뒤뜰에서 직접 가꾼 풋고추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늘 넣고 다니던 꼬질꼬질한 생필품들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민족학교 뒷마당에 나가보았다. 로스엔젤리스 민족학교의 뒷마당에는 상추, 고추, 호박, 시금치, 부추, 오이, 쪽파 등 채소들과 분꽃, 봉선화, 코스모스, 채송화 같은 한국의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모두 윤한봉이 혼자 심고 가꾸는 생명들이었다. 그는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일이 생기면 혼자 뒷마당에 나가 채소와 꽃을 가꾸곤 했다. 잡초를 뽑고 적당히 퇴비와 물을 주고 고추는 말뚝을 박아주고 오이와 호박에는 그물망을 해주어 마음껏 자라게 했다. 회원들은 그가 노련한 늙은 농부처럼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귀국하면 산속에 들어가 편안히 농사를 지으며 건강을 돌보시라고 말해주곤 했다. 자기가 떠나면 채소와 꽃을 가꿀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아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