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예수, 한국의 레닌 그는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강 완 모/전 재미한국청년연합 회장 내가 윤한봉 형님을 처음 만난 것은 아마 1983년 5월 어느 때쯤인 것 같다. 뉴욕에 유학생으로 와 있던 나는 조국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몇몇 친구들과 함께 그를 뉴욕에서 처음 만났다. 도회지에서 자라나며, 대학의 먹물만을 잔뜩 갈고 있었던 우리는 그럴듯한 차림새의 점잖은 사람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의 차림새며 모습이 영 우리가 생각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서울역 앞의 지게꾼 아저씨 같은 주름 많은 사람이어서, 이 사람은 아닐 테고, 그 뒤에 또 누가 들어오지 않나 하며 주위를 살피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처음 만난 한봉이 형님은 사정없이 우리를 뒤흔들어 놓았다. “살아있는 예수야…” “한국의 레닌이야…” 그때 같이 만났던 사람들이 하던 말들이다. 그 뒤 일 년도 안 되는 동안 우리는 뉴욕, 뉴잉글랜드, 필라델피아에 한청련을 만들고 그 후 거의 10년 동안 천둥벌거숭이, 야생마가 되어 한봉이 형님과 시간을 함께 했다. 이제 세월은 흘러 초기 한청련 세대의 자식들이 대학에 가고, 그 사이 형님은 우리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남겨진 우리들은 “이럴 때 형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하며, 그를 그리지만 답답함 속에서 별 수 없이 우리끼리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오늘 윤한봉 형님을 생각하며 그 분이 남긴 교훈 속에 우리 자신을 되돌아본다. 작은 것에 파묻혀 큰 그림은 못 그리고 앞날에 대한 비전도 없이 그날그날 되는대로 지나고 있지 않은가? 세계를 넘나드는 정세학습을 하고, 중장기 사업계획하에 꿈과 희망을 얘기하던 그 분의 가르침을 헛되이 하고 있진 않은가? 허공에 붕 뜬 얘기로, 현실이나 실질과는 동떨어진 계획으로, 다수 이웃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끊임없이 대중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그 속에서 길을 찾던 그 분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세상은 엄청나게 변하고 있는데 과거의 방식이나 관습에 젖어, 오늘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못 보고 있지는 않은가? 교조적이지 말고, 살아 움직이는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그 분의 가르침을 잊지는 않았는가? 이제 미국 동포 사회의 중심 세대로 진입하고 있는 2세대들이 그들의 꿈을 펼치고 운동을 이어받아 해 나갈 수 있게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세대, 문화 차이의 벽을 뛰어 넘으려 노력하고, 1.5세나 2세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베풀었던 그 분의 가르침을 소홀히 하고 있진 않은가? 이 많은 물음 속에 무엇 하나 시원한 대답을 못하며, 당신의 추모 1주기를 맞는다. 한봉이 형, 형님. 남겨진 일, 못 다한 일, 남은 사람에게 맡기시고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쉬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