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긴 망명 생활이 시작되다2018-12-22 15:03작성자madox58 케네디 상원의원은 윤한봉이 도착하고 얼마 후 보좌관인 칼리 키를 직접 광주로 보내 강신석 목사와 조아라 장로, 조비오 신부 등을 만나도록 했다. 윤한봉의 신원을 확인해 공식적으로 정치망명 절차를 밟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긴 망명 생활이 시작되었다. 윤한봉의 망명은 결코 개인적인 도피가 아니었다. 수백 명 젊은이를 학살하고 수천 명을 고문하여 권력을 찬탈한 군사파시즘 치하에서 벌어진 저항의 한 형태로, 많은 사람들의 지원 아래 조직적으로 이뤄진 또 하나의 민주화투쟁이었다. 세계의 양심세력에게 광주의 참상을 알릴 임무를 부여받은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그러나 그는 임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감옥행을 무릅쓰고 유독 윤한봉의 망명을 추진했던 이유였다. 목록글쓰기 댓글 [0] 댓글작성자(*)비밀번호(*)자동등록방지(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내용(*) 댓글 등록 더보기이전굶주림보다 더 힘든 것madox582018-12-22-긴 망명 생활이 시작되다madox582018-12-22다음1980년 6월 9일, 엘에이에서 전두환 규탄집회가 열리다madox582018-12-22 Powered by MangBoard | 워드프레스 쇼핑몰 망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