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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5-복학을 하지 않다2018-12-2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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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복지, 복적 결정과 토론


그리고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냐면 , 최규하 정권이 제적됐던 학생들하고 해직됐던 교수들, 복직 복적 결정을  거예요. 희망자는  받아준다. 그래가지고 인자  우리나라 학생운동 사회운동이 한번 요동이 쳤는데. 전국적으로 복학, 복직이 허용되니까 토론   없이 그냥 물밀 듯이 학교로  들어가 버렸어. 짤렸던 친구들이. 모든 대학에서 . 근데 인제 유일하게 전남에서만  문제를 가지고 심각하게 토론이 벌어졌죠. 고민을 하고. 그래서 나는 인제 복학 반대를 입장이었는데 논리는 간단했어요. 뭐냐면 그동안의 학생운동이 인제 제적당하고 투옥당하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학교에서 쫓겨나 버린 거죠. 학생들이. 그러니까 운동의 무대를 필연적으로 이제 사회로 옮긴 거죠. 그래서 사회운동에 어떻게 보면은 일익을 맡은 거에요. 노동운동 농민운동아 아니라 학생운동들이 나와 가지고 교회라든지 출판 등등을 통해서 문화라든지 언론사에 들어 간다는지 학원에 강사로 들어간다든지. 운동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로 들어가면서 현장투신도 일부 있었고 그래가지고 사회운동을 활성화시키는데 학생운동이  역할을  거에요, 인제. 학생 운동 인자들이지. 제적된 사람들이. 인제 광주전남지역만 해도 이학영이도 위장취업해가지고 서울 올라갔도 나중에 남민전에 가담하고 그랬는데. 박형선, 이강은 민청세대들인데 농민운동에 투신했고 야에 형선이는 지게지고 농촌으로 들어갔고. 이런 분화들이 일어 났고. 이향연이는 노동운동, 그러니까 사회활동이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그러고 이제 우리가 농민 운동하는 사람들,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하고 접촉해보면 학생들, 먹물들  믿어요. 불신을 . 그러니까 한쪽으로는 부러워하면서도 한쪽으로는 미워하는 그런 미묘한 것이 있었는데. 불신. 너희는 달라야. 계급이. 너희들은 언제든지 먹고  걱정을 안해도 되는 사람이지만 우린 여기 떠나면 죽는다는 것이자. 그래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연대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했거든요. 내가 저번에 이야기했던  생잔자대회   한다든가 이런 것이  이런 노력의 일환이거든요. 우리는 하나다. 함께 하자. 그렇게 해서  신뢰를 쌓아갔고 함평 고구마 사건 단식  그렇게 뒷바라지하고 참여하고. 근데 이제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다 같이 죽고 같이 살자. 노래도 같이 부르고 그랬는데 노동자, 직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하다못해 학원 강사들에 대해서는 복직 복적이 안되는 거에요. 그러면서 정부에서 교활하게 학생들에 대해서는 복학, 제적 해직된 교수들에 대해서는 복직 허용을  거에요. 특혜를 준거지. 근데 그건 정치적 속셈에 뭐냐면 분리를 시키는 거예요. 연대의 틀에서. 분리를 시킨 거죠. 복학 복직들 결정하니까 우우  들어가버렸어. 인제 광주에서는 심각하니  문제 가지고 모여서 토론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학원으로 돌아가서 학생운동을 계속 하겠다는 마음을 굳힌 사람은 복학을 해라. 남아서 사회운동을 계속  사람들은 복학하지 말고 남자. 그래서 이건 강제할  없는 것이니까, 그러고 우리가 무슨 철혈조직도 아닌데 조직결정으로 해서 강제할 수도 없으니까 자유선택을 하도록 하자. 그래서 돌아가면서 자기 입장을 밝히기로  가지고 나는 복학하겠다, 돌아가서  싸우겠다. 나는 남겠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는 졸업장을 받고 직장도 잡겠다. 인제 이런 사람들이 나오고 그랬는데 그래갖고  포함해서  5 정도 남았어요. 나머지는 들어가고. 그러니까 인자 학원으로부터 자유로워  거죠. 상당히. 복학을  하니까. 70년대 운동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제 전국  지역 간의 정보 교환이라든가 유대의 틀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인제 작동을 해서 이를테면 인제 가끔 모여서 서울에서 모여가지고 대구 쪽에서 부산 쪽에서 전북에서 전남에서 서울, 경기쪽 이런 데서   명씩 모이는데 이번에는 419 앞두고 학원가에서 가두투쟁, 가두진출을 해서 시위를 하는데 구호는 뭘로 하자. 성명서 내용은 이러이러한 형식으로 하자. 요런 어떤 뭐랄까 전략전술도 논하고 정보도 교환하고 그런 자리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는데 그게 이제 4 10일경에 인천에서 했는데. 박귀연인가? 이름은 여기 책자에 나와 있어. (『운동화와 똥가방책자를 가리킴) 서울에서 인제 여러 명이 나왔지.  다음에 인제 광주에서 내가 가고 전북에서 최인규라고 지금 와서 보니까 목사님이든데. 대구에서 백선우 오고.  내책에 있어요 모였어 인제. 근데 그때 인제 전국적으로 가두투쟁이 인제 가두진출이  대학마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땐데 전남만  움직일 때야. 가두로  나오고 있을 . 우리보고  가두진출  하냐고. 근데 전남대는 복학생들 중심으로 해가지고 재학생들하고 똘똘 뭉쳐가지고 어용교수들 퇴진운동을 내걸어서 그걸로 해서 학생들을 묶으로 있었을 때였어.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어용교수백서도 내고. 정보교환  가면서 안팎에서 서로 함께 하는데 그때 4 10  모였을 , 모두들  이야기 하는데 이번 419 전면철폐를 내세우자 말자부터 그런 소리를 하고 앉아있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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