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 샘, 다음엔 합수 샘 이런 ‘히읗 자’ 연락처가 내게 있다. 한수 형은 가수 정태춘 형. 내 산골짝 집에 몇차례 오시기도 했다. 다음에 윤한봉, 합수 샘은 고향 선배다. 오월 광주의 미국 망명자. 돌아가신 뒤 기념사업회가 전남대학교 앞 공간에 같이 둥지를 튼 일도 있었다. 귀천하신 뒤에도 이름을 감히 지우지 못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인단체 초대로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나그네 망명자 합수 형이 그곳에서 허리띠도 풀지 않은 채 눕고, 침대가 아닌 바닥에 이불 깔고 자면서 오월 동지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전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망명자의 노래 같은 신산한 노래를 들었다. 정태춘 신보에 담긴 ‘나그네’와 ‘빈산’. 먼 오랜 날 ‘탁발승의 새벽노래’가 스멀거렸다. “승냥이 울음 따라, 따라 간다. 별빛 차가운 저 숲길을… 한수야, 부르는 쉰 목소리에 멈춰 서서 돌아보니 따라온 승냥이 울음소리만 되돌아서 멀어지네.” 방랑자, 망명자들, 홀로된 자들. “어미마다 제 아이 불러가고 내가 그 빈들에 홀로 섰네… 이제는 그 길을 내가 가네. 나도 애들처럼 밟고 가네.”(나그네) 노래는 신산하게 부는 바람처럼 끝나고, 고꾸라진 팽나무가 보이는 외딴집에 사는 나는, 멀리 시내의 불빛이 깜박거리는 빈산에 기대 다음 노랠 듣는다. “억새 춤추는 저 마을 뒤 빈산….” 내일 아침엔 음반 잘 들었다는 감상문을 보내드려야겠다.
나그네라는 말은 ‘나가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나다, 나가다. 집 나간 사람. ‘네’는 사람을 뜻한다. 집을 나가면 누구나 개고생. 집에서 내쫓긴 순간 고생길. 어쩌면 우리 모두 집을 나간 나그네 신세인지 모른다. 스스로 망명자가 된 사람도 있다. 망명자들의 눈은 푸른 창공 같고 한없이 가난하다.
두 눈 질끈 감은 사람. 이 세계의 추한 혼탁에서 벗어난 용맹정진 수도자도 마찬가지다. 또한 남미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책을 읽는 사람, 노래를 듣는 사람을 가리켜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라고 했다. 저 길거리의 사람들, 저 무수한 불빛 지붕들 아래에 더러 나그네 망명객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