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망명: 윤한봉 회고록』, (한마당, 2009)

 서평: 이대훈

 

 

평화외교, 공공외교는 윤한봉 모델로부터!

 

이 책은 『운동화와 똥가방 – 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의 미국 정치 망명기』를 다시 펴낸 책이다. 합수 윤한봉은 70년대 이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의 한 사람이다. 수 차례 옥고를 치르다가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주모자로 수배되어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도피하던 중 천신만고 끝에 화물선에 숨어 미국으로 밀항, 망명하였다. 절판된 『운동화와 똥가방』은 합수 윤한봉이 그 밀항과 망명, 그리고 미국에서의 새로운 사회운동을 기록한 것이자 동시에 “삼가 5월 영령들과 그 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 그리고 한청련, 한겨레 회원들에게 바친” 헌사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에서 혼신을 다해 ‘민족학교’를 설립하고 ‘재미한국청년연합’과 ‘한겨레운동 재미동포연합’ 등을 결성하여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지원하고 국제적인 연대를 이끌어내는데 중추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새로운 모임,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마다 윤한봉은 한인 청년들과 몇날 며칠을 함께 숙식하고 밤새 토론하며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냈다.

 

그는 한국을 넘어 반전반핵 세계평화운동과 제3세계 연대운동에 독보적인 기여를 한 특출한 실천가이자 사상가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화를 이끌어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미국의 평화운동을 포함해 당대 전 세계의 다양한 진보적 해방운동과 깊은 교류를 구축하고 있었다. 80-90년대 인권, 민주, 평화를 주제로 열리는 주요 정부간, 또는 민간 국제회의에서 윤한봉의 한국청년연합과 민족학교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윤한봉의 혜안과 헌신성, 그리고 그의 국제연대가 너무 저평가되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좋을 것이다. 윤한봉과 그의 젊은 동료들이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낸 ‘시민들의 국제’는 윤한봉 모델로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특히 최근 조금씩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시민주도 평화외교의 모델로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이 나는 윤한봉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윤한봉의 국제연대, 시민평화외교 모델은 더 깊게 더 오래 연구될 필요가 있다.

 

 

나는 윤한봉의 활동을 이해하고 기념하는 하나의 틀로서 [윤한봉 모델 - 현지화기반 시민외교 모델]이라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특징은 교민 공동체에 의제와 조직을 뿌리내리는 데에서 출발하여, 미주와 기타 해외 지역에 걸쳐 광범위한 지지-참여 인적 네트워크의 구축하고, ‘민족학교’ 등 교육과 모임의 구심점으로서 교육프로그램 실행하여 청년조직을 우선 조직화하는 면을 보인다.

 

그리고 한국 민주화 지원 및 관심 조직을 다변화해서 만들거나 영향을 미치며, 그에 필요한 재정 역시 해외 교민공동체와 현지 시민사회에 기반한 모금과 재정 지원에 기반을 두는 특징을 보였다. 한국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 미국에서 관심 기반을 먼저 형성한 후 캐나다-호주-유럽 지부로 확산하였다. 민주-평화 어젠다를 가시화하고 언론화 하기 위해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창의적 이벤트의 기획과 민간 외교센터에 해당되는 ‘민간 연락사무소 겸 정보센터’도 워싱턴에 수립하였다.

 

『망명(운동화와 똥가방)』에서는 이 전 과정을 윤한봉의 기록과 회고로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귀국 후 목격한 새로운 주류를 보면서 “이것이 아닌데...”라고 했던 윤한봉의 한탄을, 한낱 패션으로 전락한 각종 국제포럼의 범람 속에서 다시 소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