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대표제2차 세계대전은 두개의 분단선을 남겼습니다. 동독과 서독의 분단선은 이유가 있는 선이었다면 남과 북의 분단선은 이유가 없는 선이었습니다. 전범국 일본의 영토 위에 그어져야 할 분단선이 왜 한반도의 38선 위에 그어져야 했는지 생각만 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30년 전 1989년 8월15일 나는 임수경과 함께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나의 땅, 조국의 땅을 건넜는데 저는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건넜고, 트럼프 대통령도 건넌 그 선을 우리 국민은 아직도 건널 수 없습니다.
“궂은 날을 당할 때마다 38선을 싸고도는 원귀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도 같다”고 김구 선생은 3천만 동포에게 고했습니다. 1948년이었습니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러운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선생의 통찰 그대로 우리는 2년 뒤 동족상잔을 겪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분들이 400만명에 가깝다고 합니다. 이분들의 영령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사제인 저만의 고민이 아닐 겁니다.
1989년 국제평화대행진 당시 윤한봉의 동료들은 북측 당국자들에게 합동위령제를 제안했습니다. “7월27일 판문점에 도착하여 6·25 때 돌아가신 영령들의 합동위령제를 지내자. 참전 16개국의 대표와 남과 북의 대표, 도합 18명의 대표들이 함께 분향하고 재배하고 묵념을 올리자. 그런 후 국제평화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자.”
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합동위령제를 지낼 것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군경이 양민을 죽였습니다. 인민군이 국군을 죽였고, 국군이 인민군을 죽였습니다. 미군이 북한을 초토화했습니다. 누구 때문에 전쟁을 하게 되었나요? 저는 이 문제를 따지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대가 범한 불행한 일을 후대가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죄하지 않고 어떻게 화해할 것이며, 화해하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맞이할 것인가요?
1989년 국제평화대행진을 추진하던 윤한봉 선생이 이루고 싶은 뜻이 한가지 더 있었습니다. 휴전선의 비무장지대에 ‘국제 평화촌’을 건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이랬습니다. “나는 군사긴장이 높은 조국에서 평화가 정착하려면 비무장지대에 평화촌을 건설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평화 운동의 성자들을 초대하자. 인종과 민족, 종교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모든 사상과 철학이 한곳에 모여 함께 연구하고 함께 생활하는 ‘소지구촌’을 만들자는 것이다.”
분단과 전쟁의 상징이었던 휴전선의 비무장지대가 거꾸로 ‘국제 평화촌’이 된다면 이것으로 남과 북은 국제평화의 기지로 탈바꿈되는 것이 아닐까요? 고 윤한봉 선생이 남기고 간 이 꿈이 우리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이 된다면, 불원간 꿈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일어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종전을 선언하라.” “핵무기와 핵위협을 제거하라.” “평화협정을 체결하라.” “대북제재 해제하라.” 오는 27일 오후 3시, 미국대사관 둘레길과 일본대사관 둘레길을 함께 걸읍시다.